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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관한 두 정의 – 그 중 하나만이 올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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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철학과 방법론

01/18/2019

Translated by Haeng-Bum Kim]

1월 6일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유명한 1941년의 “네 가지 자유”(Four Freedoms)가 나온 날이며, 또 1월 11일은 1944년 그의 연두교서가 나온 날인데 그는 거기서 그 자유의 의미를 더 확장했다. 이 때문에 지금은 미국인의 삶에 대해 정부 권력을 확대하는 정당화 근거로 오늘날까지 인용되고 있는 자유에 대한 FDR(프랭클린 딜라노 루스벨트)의 시각 속에 있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깨닫기에 적절한 시간이다.

표면적으로는 이 복수의 자유들은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freedom for all, 보편적 자유)와 양립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FDR이 생각하는 자유는 그렇지 않다.

FDR의 “인간의 네 가지 필수적 자유”(four essential human freedoms) 중 처음 두 가지, 곧 “언론과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 and expression) 및 “누구든 하나님을 자신의 방식으로 경배할 자유”(freedom of every person to worship God his own way)는 모든 사람들의 자유와 양립한다. 이 둘은 보편적으로 향유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말을 하거나 경배를 하는 방식은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갖는 자유를 빼앗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런 권리들의 침해를 금지하면 그만인데, 거기에는 그런 시민의 권리들을 침해할 가장 큰 힘을 가진 기관인 정부 자신에 의한 침해도 포함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FDR의 세 번째 자유인 “결핍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want)는 그 같은 보편적 자유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정부로 하여금 어떤 사람들에게, 그들이 타인과의 자발적 합의에서 얻어진 것보다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위임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원의 희소성이 있을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자체의 자원이란 없으며 자신의 시민들로부터 강제로 빼앗는 자원만을 가진 기관에게 그런 임무를 맡기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기 소유물의 과실을 누릴 수 있는 타인의 평등한 자유를 위축시킨다. 즉, 그런 자유는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와 충돌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FDR의 네 번째 자유인 “어떤 나라도 그 이웃에 대해 물리적 공격을 가하는 지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공포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fear)는 표면적으로 보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시민을 외적으로부터 보호함은 정부의 핵심 역할이므로. 그러나, 그것 역시 자신의 정부 수중에 주어진 권한 남용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인데, 그런 예는 역사적으로 가득하다. 특히, FDR의 세 번째 자유는 정부가 자신의 자애로움(benevolence)을 베푸는데 필요한 자원을 얻기 위해 시민들의 자유를 침해하도록 요구하므로, 시민들이 “공포로부터의 자유”와 관련해 두려워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관인 정부를 두려움의 대상에서 빠지게 만든다(역주: 세 번째 자유를 위해서는 정부를 열망해야 하고 네 번째 자유를 위해서는 정부를 기피해야 하는 모순이 나타난다). 그것은 또한 권리장전(Bill of Rights), 곧 바로 우리의 정부가 그러한 침해를 못하도록 설계된 “~하지 말지어다”(Thou shall nots)라는 금지조치들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무시하는 것이다(역주: 특정한 개별 권익들을 보장하기 위해 구체적인 특정 조치들을 취하라고 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맡기고 정부는 자유로운 사적 자치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몇 가지 금지 조치들, 예컨대, 사기, 절도 및 계약 위반을 금하는 조치들만 취해야 한다는 입법 방식이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주의는 적극적 정부가 아니라 소극적 정부를 필요로 한다).

FDR의 “네 가지 자유”란 미사여구는 자유의 의미를 극적으로 바꾸어 미국인 모두를 위한 자유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 왜곡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선현들이 보장하고자 했었던 보편적으로 가질 수 있는 핵심적 자유는, 루트비히 미제스가 요약한대로, “정부로부터의 자유... 정부 간섭의 제한”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정부의 시혜에 대한 어떠한 적극적 주장을 하는 것(즉, 타인들에게서 자원을 빼앗는 강제 자선)이 아니라, 정부 지시를 받지 않을 자유를 보존하여 모든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는 평화롭고도 자발적 합의를 확장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보편적 자유(모든 사람들을 위한 자유)와 양립되지 않는 “자유들”이 선포될 때에는, 위에서 본대로 그런 부담을 부과 받아야 할 정부 자신이 간과될 뿐이다.

자유란 멋지고도 영감을 주는 말이며 희망과 가능성으로 가득 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들의 평등한 자유를 탈취하여 누군가의 자유를 확대하면서, 보편적 자유를 줄이는 뭔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조작되어져 왔다. 자유 오용의 많은 예들은 그러한 인지부조화를 발판으로 나타나, 사회가 최선의 상태로 될 수 있고 최대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위축시켰다. 우리가 상호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높이는 것이 자유를 정부의 강제가 없는 보편적 자유로 일관되게 이해함을 회복하는 것에 달려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뭔가를 공짜로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서 타인들은 아무 대가 없이 그 비용만 지불하도록 강제하는 것(something for nothing promises that force nothing for something onto others)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글쓴이) Gary M. Galles

개리 갤리스는 UCLA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으며 현재 페퍼다인대학교 경제학 교수로 재정학, 공공선택론, 기업이론 등을 가르친다. 『평화의 사도: 래너드 리드의 급진적 사상』의 저자이기도 하다. 최근 미국 미제스 와이어에 트럼프의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와 관련하여 ‘셧다운은 정부가 참으로 얼마나 믿을 수 없고 해로운가를 보여준다’는 글을 게재한 바 있다.


Haeng-Bum Kim is professor of public choice at Pusan National University,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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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y M. Galles is a professor of economics at Pepperdine University. He is the author of The Apostle of Peace: The Radical Mind of Leonard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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